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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장 1절~16절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 천국은 역시 어떤 사람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왜 어떤 장소가 아닌 사람에 비유하는 것일까? 천국이라는 것이 어떤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이 녹아있는 집약체는 아닐까? 때론 천국이 그 자체로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2. 이와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일찍부터 온 자들이 나중온자와 같은 품삯을 받자 불평한다. 불평의 원인은 비교에 있다. 또한, 내가 저들보다 더 일을 많이 했는데, 내가 먼저 선택받았는데... 라는 일종의 교만한 선민의식이 존재한다. 이런 교만이 들어간 자는 겸손하면서 늦게 선택받은 자들보다 결국 나중된 자가 되는 것이다. 비교하고, 정죄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님의 사랑, 주님 나라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23절~30절
1.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사람이 가진 능력, 부, 이런것이 천국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때문에 결국 하나님손에 천국이 달려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천국이 내가 어떻게 해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려울 것이다.
2.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이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믿음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인양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이 사람들은 나중에 믿는 자보다 못하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1절~12절
1.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 배우자와 둘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 몸이 되어야한다. 한몸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봐야하고, 같은 것을 느껴야하고, 같은생각을 하며 살아야한다.
2.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하셨는데, 혼인이라는 것이 그냥 저들끼리 짝지었다면, 하나님은 상관없으시다면 나눌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혼인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것인가? 또한, 믿는자들의 혼인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라 하더라도 믿지 않는 자들의 혼인도 인간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속한 것인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탄생이 하나님께 속한 일인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하나를 둘로 나누시고, 결혼을 통해서 둘을 하나로 합하신다. - 토마스 아담스
마태복음 18장 15절~35절
1.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 아무리 권면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최인으로 여기라하신 말씀은 결국 그를 실족시키라는 얘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잃은 양인가? 아니면 양이 아닌가? 그 구분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2.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 천국 = 어떤임금. 천국이 어떤임금, 즉 사람과 비슷하다는 의미이다. 천국은 용서해주는 임금과 같다.
마태복음 18장1절~14절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 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 어린아이들과 같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아이의 겸손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린아이는 과연 겸손한가?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또한 무슨 의미인가?
3. 이와같이 아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 그렇다면 그 하나로 인하여 여럿을 잃는다면, 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그 하나를 버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아니한가? 하나를 잃지 않기 위하여 여럿이 실족하게 되면, 그것은 어찌해야하는가?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을 하면 모든것을 다 설명해줄 수 있을지.. 아직 발전이 덜 되었기때문에 설명이 안되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간에 분명한건 과학발전의 종점은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끊임없이 근원적인 부분을 파고들 것이고, 뭔가가 나온다면, 그 뭔가의 원인을 또 규명하려 할것이다.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을 파악할 것이고, 그 원인의 원인을, 또 그 원인의 원인을... 그 끝이 과연 존재할까? 예를들면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km이다." 이런 부분들은... 여기에 왜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km일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질문에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있을까? 초속 10만 km일수도 있고, 40만km일 수도 있는데, 왜 하필 30만km일까? 어쩌면 미래에 수백만가지 factor에 의해 빛의 속도가 저렇게 결정되었다는 결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 factor들에 대한 이유들... 또한 왜 이 우주가 생겨나게 되었을까 같은 추상적인 질문들.. 그리고 왜 이 우주는 하필 지금의 형태일까? 더 근본적으로 과학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어떻게 인간은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을까?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오늘 뉴스기사를 보니 스티븐 호킹 박사가 우주는 신이 만들지 않고 물리학 법칙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무신론적 입장을 따르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들의 상황에서보면 어쩌면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 사유의 한계이지는 않을까? 믿음이란 이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과학으로 신을 증명하려는 것은 절대로 증명되지도 않을것이고, 그것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증명되어야할 존재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신이 증명된다면 그것은 인간 사유의 산물인데, 과연 그것을 신이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다. 영원히 계시는 분이기도하다. 물리학 법칙이 우주를 만들었다면, 그 물리학 법칙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주님,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주님의 영광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성공, 저의 직업,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위치를 통하여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연구하는 것이 하나님 사업에 직접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러한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러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왜 꼭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한 명확한 솔루션을 찾으려 할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신앙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어떤 사건이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때, 사람들은 너무 명확하게 단정짓기를 원한다. 과연 일단락 짓는 것이 진리에 이르는 첩경이 될까? 물론 명확한 솔루션을 찾고, 그것이 맞는 답이라면, 그것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답을 모르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솔루션을 명확하게 만들려고 하다보면, 여러가지 오류에 빠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여러가지 여지가 있는 형태로 솔루션을 찾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때 솔루션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가 될 수도 있다. 그 솔루션을 모두 제시함으로써, 하나만 선택했을때의 오류나 문제점을 절충해 나갈 수 있다. 물론 이런 방법이 어쩌면 뭔가 찜찜하고, 이도저도 아니지 않냐고 반론할 수도 있고, 너무 우유부단한 방법이 아니냐고 할수 있지만, 잠재적인 오류를 지니고 있는 어느 하나의 솔루션만을 선택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서 여러가지 솔루션들의 비중은 달라질 수는 있지만,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방법은 최선의 선택을 위한 것이다. 최선의 선택은 엄밀히 말하자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 선택하지 않는 것에 가장 근접한 것은 선택을 최대한 미루는 행위가 될 것이다. 선택을 최대한 미루면서 충분히 다른 요소들을 고려해보고, 그 모든 가능성을 포함할 수 있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영원히 살 집이 못 되는 곳. 풀잎에 맺힌 흰 이슬, 물에 비치는 달 보다 허무하네. 황금빛 골짜기에서 꽃을 읖조리던 영화는 먼저 무상한 바람에 흩날리고 남쪽 망루의 달과 노닐던 이들도 달보다 먼저 가버려, 무상한 이세상의 구름에 가리우고 인간 오십년 돌고 도는 인간 세상에 비한다면 덧 엎는 꿈과 같구나. 한 번 태어나 죽지 않을 자 그 누구인가.
노부나가의 결의의 찬 아츠모리인데.. 오케하자마 전투직전에.. 읊었다는 아츠모리.. 결국 노부나가는 오십줄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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